갑자기 찾아온 형사 “네가 화성 8차 범인이다” 그리고 사흘간 무참히 팼다

연합뉴스

“자백해 준 이춘재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가 자백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묻혔을 겁니다.”

지난달 27일 충북 청주에서 만난 윤성여(55)씨가 한 말이다. 윤씨는 1980~90년대 화성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후 이춘재 살인사건)’에 엮여 갖은 고초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불과 1년여 전인 2020년 12월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기 전까지 32년간을 살인 누명을 쓴 전과자로 살았다고 한다.

윤씨는 “무죄 선고를 받고 새로 태어난 인간으로 새 삶을 살고 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전과를 달고 사는 게 너무 힘들었었다”며 “해외여행도 가고 중학교 검정고시, 운전면허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윤씨의 파란만장한 삶은 1989년 7월 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후 7시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태안읍의 한 농기계센터. 농기계 수리공으로 이름을 날리던 윤씨(당시 22세) 앞에 형사 서너명이 들이닥쳤다. 고추장에 대충 비벼놓은 저녁밥을 막 뜨려던 참이었다고 한다.

사진공동취재단

“갑시다.” 형사의 낮고 묵직한 말이 방 안의 정적을 깼다. 농기계 센터 사장이 “무슨 일이냐”고 따졌지만, 경찰은 윤씨를 노려보기만 했다. 애써 상황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싶었을까. 윤씨는 “밥이나 먹고 가자”며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경찰은 “잠깐이면 된다”며 윤씨를 수갑 채워 끌고 나갔다고 전했다.

밖은 이미 경찰 수십 명이 농기계 센터를 둘러싼 상태였다. 윤씨를 7인승 승합차에 태운 경찰은 지서(파출소)를 들르지 않고, 인근 야산으로 차를 돌렸다. 가로등 하나 없는 헬기 착륙장에 차가 서더니 형사가 입을 열었다. “네가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이다.”

이하 연합뉴스

체포 당시 10년차 베테랑 수리공이던 윤씨는 화성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1990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09년 감형 결정이 있기까지 무려 2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진짜 범인이 밝혀진 건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2019년 가을 무렵이다. 경찰 DNA 분석과 자백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 화성 사건의 진범은 ‘이춘재’. 윤씨의 동네 3년 선배였다고 말했다.

윤씨는 89년 경찰서에서 받은 가혹 행위에 대해 “더는 기억하고 싶지않다”고 했다. 경찰은 당시 윤씨를 체포한 뒤 72시간 동안 조사했다. 윤씨는 “누가 죽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난 사건 자체를 몰랐다”며 “나중에 허위로 밝혀졌지만, 경찰은 방사선동위원소 분석으로 나를 범인으로 특정했다더라. 체포 두 달 전 경찰이 체모를 7~8차례 뽑아갈 때도 사건을 모르니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누명을 쓴 윤씨가 무기징역 선고받게 된 이유는 그의 자백이 크게 작용했다. 윤씨는 33년이 지난 일인데도 ‘자백’이란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거기(경찰 조사실)에 들어가면 내가 안 한 것도 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며 “3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고, 고문과 구타를 일삼았다”고 말했다.

윤씨의 말을 종합하면 경찰은 72시간 동안 가혹 행위를 가하며 그에게 진술을 강요했다. 다리가 불편한 윤씨에게 쪼그려 뛰기를 시켰지만, 그가 앞으로 자빠질 때마다 발로 걷어차는 등 폭행했다. 윤씨는 “때려도 상처가 남지 않는 급소만 골라 때리더라. 발로 걷어차일 때마다 눈앞에 별이 번뜩였다”며 “잠을 못 자다 보니 3일째는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안 되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윤씨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범행을 진술했다. 윤씨는 “하도 맞다 보니 내가 안 한 것도 했다는 말이 나오더라. 자필 진술서가 나오고, 내 사인이 있었다. 그걸 어떻게 썼는지 지금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씨는 90년 5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그는 “항소심부터 무죄를 주장했지만, 돈 없고 백 없는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안양과 원주를 거쳐 90년 10월부터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한 윤씨는 수감자와 교도관으로부터 ‘무죄’란 별명을 얻었다. 윤씨는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 무죄라고 안에서 떠들고 다녔다”며 “하춘화의 ‘무죄’라는 노래를 지겹도록 부르고 나니 무죄란 별명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3살 때 열병을 앓은 뒤 소아마비에 걸렸다. 왼쪽 다리가 굳고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날 취재진을 만나는 자리에도 몸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혼자 걸어왔다. 손엔 굳은살이 있었다. 윤씨는 “교도소 출소 후 봉제 일을 했다가, 2년 뒤부터 자동차 시트에 들어가는 가죽을 재단하는 공장에 다니고 있다”며 “집과 공장, 성당을 오가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2020년 11월 재심 법정에서 이춘재를 처음 봤다고 한다. 그는 “화성에 살면서 이춘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의 3살 어린 동생이 나랑 친구인 사실을 알았다”며 “그가 재심에 나와 8차 사건을 범행을 얘기하는 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이춘재는 증인석을 나가며 윤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씨는 이춘재의 증언이 끝난 뒤 언론에 “자백해 준 이춘재에게 고맙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왜 이춘재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냐고 의아해했다”며 “이춘재가 자백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묻혔을 거다. 내가 안고 갔을 것인데, 모든 것을 시원하게 얘기해주니 그게 고마워서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윤씨는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과거 자신을 수사한 경찰관과 검사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윤씨는 “재심 법정에 나온 경찰관과 검사가 ‘기억이 안 난다.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그분들에게 지금이라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저작권자AR ⓒ코리안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